단군신화는 고조선 시기의 산물인가?

    단군신화를 이해하려 할 때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과연 그것이 고조선 대에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단군신화가 고려 후기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이들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의문의 출발점은 『삼국유사』가 13세기에 쓰인 사서라는데 있다. 고조선이 기원전 2세기에 멸망하였으니 양자간에는 무려 1500여 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으며, 단군신화를 담은 내용 중에는 후대의 것으로 판단되는 것도 적지 않다. 가령 '환인(桓因)'은 산스크리트어[梵語]의 'Sakrodevendrah'라는 말을 한자로 음역한 '釋帝桓因陀羅'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고대 인도 신화에 많이 등장하는 명칭으로 이후 불교 신앙체계에 수용, 수미산 도리천에 거주하며 사방을 진호(鎭護)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4세기 이후이므로 단군신화도 그 이후에 성립되었다는 추정이 일단 가능하다.

    한편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데는 단군신화가 들어 있는 『삼국유사』 이전의 기록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은 물론이다. 그런 면에서 한때 중국 산동성 가상현의 무씨 집안 사당에 있는 전한(前漢) 대의 화상석 그림이 단군신화와 흡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단군신화는 이미 기원전부터 있어왔음이 분명한 것이다. 이 주장은 특히 산동성 지역이 상고(上古) 시기에는 동이족의 거주지였다는 사실과 결부되어 크게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그림은 단군신화와는 무관한 중국신화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삼국유사』 이전의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 단군신화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