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적 '신화' 속의 역사적 '사실'

    ▲청동기시대 제사장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청동팔주령(왼쪽 아래)과 청동거울(오른쪽 아래) 및 비파형동검(위). 단군은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청동기시대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의 제사장으로 보기도 한다.

    단군신화가 고조선 시기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그 내용 또한 그대로 사실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군신화가 완전한 허구도 아니다. 그 속에는 신화가 형성된 시기의 역사적 상황이 투영되어 있고 당시 사람들의 집단적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상황과 사람들의 의식의 일면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점은 단군신화와 같이 오랜 기간 구전되어 오다 훗날 문자로 정착한 경우에는 전승 과정에서 후대의 요소가 첨가된다는 점이다. 가령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해가 기원전 2333년이라는 것은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 국가의 형성은 최소한의 객관적 조건으로 농업 경제와 청동기문화가 어느 정도 성숙된 다음에 가능하다.
    그런데 한반도와 남만주 지역에서 그런 객관적 조건이 마련된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기원전 10세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오히려 기원전 2333년이란 연대는 중국신화에 전하는 성군으로 문명을 열었다는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가 건국되었다는, 즉 우리가 중국 못지 않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단군이 하늘신의 아들인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태어났고 천수백 년을 살았다는 것을 황당무계하다고 일축하는 이해방식도 옳지 않다. 그 속에 반영된 당시인들의 관념과 삶의 일면을 시대상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요컨대 단군신화는 고조선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골격이 형성되고 기능했던 만큼 그 내용도 일차적으로는 고조선 시기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흔히들 신화의 유형을 셋으로 나눈다. 첫째는 천지만물의 형성 등 자연현상을 위주로 구성된 신화이다. 둘째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위주로 한 신화이다. 자연과의 투쟁, 문명의 개시 등에 관한 신화류가 그것이다. 셋째는 인간 관계와 사회 문제가 중심인 신화이다. 크게 보면 이러한 세 유형의 출현 시기가 순차적인 면을 지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단군신화의 주된 부분은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의 요체는 하늘신이 웅녀와 결합해 낳은 이가 고조선을 건국하고 그 자손들이 왕위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즉 고조선 왕이 정통성과 존엄성의 근저를 신성한 핏줄에서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럴 때 천손인 왕은 자연히 반은 인간, 반은 신인 신이(神異)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내세워지게 되며, 단군신화는 이와 같이 고조선 왕실의 신성한 내력을 밝힌 일종의 '본풀이'라고 할 수 있다. 성주 무가(巫歌)의 구조와 단군신화의 그것이 기본적으로 일치한다는 지적은 그런 면에서 유의되는 바이다.
    신성한 왕실의 내력을 밝힌 단군신화는 각지의 족장층이 참석한 가운데 신왕의 즉위식과 제의(祭儀) 및 연희를 통해 재현되어 행해졌을 것이다. 당시 고조선은 왕의 휘하에서 일정한 통제를 받는 동시에 강한 자치력을 지닌 여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왕이 집전하는 제사 의례에 이들 집단의 장들이 참가하는 것은 곧 왕의 권위에 귀속함을 서약한다는 의미였다. 아울러 의례를 행할 때 각지의 사람들이 참집(參集)한 가운데 상호교류와 물자교환 등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와 왕실의 신성함을 내세우는 의례에 참가함은 주민들간의 정서적 일치감을 함양하는데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단군신화는 일종의 정치 이데올로기적 성격으로 정치,사회적 통합 기능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