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단군릉'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에 조성된 단군릉. 동명왕릉, 왕건릉과 더불어 북한이 3대 성역화 작업으로 조성한 것으로, 개건 연대를 상징하는 1994개의 화강석을 다듬어 9개의 단으로 쌓아올렸다. 주위에는 단군의 네 아들상을 비롯, 여러 가지 조각상이 서 있어 그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북의 '단군릉'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의 단군릉에 대한 주장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먼저 고구려시대의 무덤인데 단군릉으로 잘못 전해왔으며 연대측정에도 착오가 일어났을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와 북한에 있는 단군릉은 엄연한 우리 민족의 시조인 존재했던 단군의 무덤이라는 견해(단군릉에서 고구려시대의 못이 발견되었다고 부정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고구려 시대 사람들이 능을 발견하고 수리 작업 과정에서 못이 들어갔다고는 생각하는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

    단군릉 발굴에 대한 북한측의 견해는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인 면을 더 보이고 있다.
    북한이 단군조선이 붕괴 된 후 단군조선을 계승한 나라들이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옛 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을 간과한 채,《삼국사기》에서 "평양(平壤)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댁(宅)이다"라고 해서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본다.
    또한《삼국유사》〈고조선〉조에서 단군조선의 도읍 가운데 아사달이나 평양성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던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데 아사달이나 평양이라는 지명은 한 곳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평양성, 아사달은 요령성 심양 동남 본계시(本溪市) 지역, 중국 북경에서 가까운 난하 하류 유역에도 있었다.
    '한민족'의 발상지이자, 생명의 젖줄이기도 한 백두산(白頭山) 정상에 있는 천지(天池)의 물은 두갈래로 흘러 재중동포들이 살고 있는 중국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송화강(松花江)을 이루고, 북한 땅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압록강을 이루는데 단군조선을 건국한「국조 단군」의 묘가 있다면, 백두산부근이나, 송화강 주변, 또는 만주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사달」은 무슨 뜻을 담고 있는 명칭일까.
    아사달」은「국조 단군」이 나라를 처음 열었을 때의 첫 나라이자 도읍지 명칭으로「아침의 나라」,「출발의 땅」,「최초의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