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사무소 뒤에 있는 '제석사'는 일반적으로 밤골로 알려진 원효의 탄생지이다. 원효는 출가한 후 그가 살던 집을 절로 만들어 '초개사'라 하였는데, 사바세계에 묻혀 찾기가 힘든다.(2001년 4월 23일)


원효스님의 탄생지 - 제석사를 찾아서

[원효 찾아가는 길] : 대구->경산 ->자인면->제석사->하양->영천->수운유허지->경주분황사->골굴사->포항오어사

    대구시내에서 남부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 남쪽으로 벗어나면 시민들이 식구와 벗들과 함께 찾아가 봄이면 딸기를 먹고, 여름이면 포도를 먹으며 즐거이 놀았던 고산 딸기밭, 포도밭이 나온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그때의 포도 팥은 지금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위한 종합경기장으로 우람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경산시를 지나면 넓은 압량벌판 가운데에 20층의 고층 건물과 여러 건물군들로 이루어진 영남대학교가 보인다. 영남대학교를 왼쪽으로 바라보면서 자인면으로 들어가면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제석사란 표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효스님의 탄생지라 이름난 제석사란 곳을 찾는데 찾을 길이 없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남대학교도서관전경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다행히 자인면사무소를 찾아 들어가 물으니 면사무소 담을 끼고 100여미터를 지나면 소방서가 있고 그곳에 제석사 입구 푯말을 볼 수 있다 한다. 내친 김에 원효스님을 위하고 자인읍을 위해 한마디 부탁을 드렸다. 그래도 이곳이 원효스님의 고향이며, 제석사가 탄생지라 찾아오는데 어찌 그렇게 소홀히 하였나싶어 행정당국이 보다 관심을 갖고 홍보하고 지켜달라고 청하였다.

    한적한 곳에 숨어있는 산사와는 판이하게 달리 원효스님의 탄생지라는 제석사는 바로 스님의 원융무애(圓融無碍)사상을 닮은 듯 사바 속세 품에 깊이 안기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자인중학교와 경산공업고등학교 정문 맞은 편, 골목입구에 ‘원효성사 탄생지’라는 표지석은 보았건만 많은 집들과 4-5층의 아파트동 그리고 높은 교회의 첨탑에 가리웠나? 가슴을 두근거려보지만 금방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자인면사무소를 찾아 들어가 물으니 면사무소 담장을 끼고 100여미터를 지나면 소방서가 있고 그곳에 제석사 입구 푯말을 볼 수 있다 한다. 내친 김에 원효스님을 위하고 자인읍을 위해 한마디 부탁을 드렸다. 그래도 이곳이 원효스님의 고향이며, 제석사가 탄생지라 찾아오는데 어찌 그렇게 소홀히 하였나싶어 행정당국이 보다 관심을 갖고 홍보하고 지켜달라고 청하였다.

    한적한 곳에 숨어있는 산사와는 판이하게 달리 원효스님의 탄생지라는 제석사는 바로 스님의 원융(圓融)무애(無碍)사상을 닮은 듯 사바 속세 품에 깊이 안기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자인중학교와 경산공업고등학교 정문 맞은 편, 골목입구에 ‘원효성사 탄생지’라는 표지석은 보았건만 많은 집들과 4-5층의 아파트동 그리고 높은 교회의 첨탑에 가리웠나? 가슴을 두근거려보지만 금방 찾을 수가 없었다.  

폐타이어를 이고 있는 대웅전

제석사대웅전

[폐타이어 이고 있는 제석사 대웅전]

    원효스님은 신라 진평왕 39년인 617년에 현재 경북 경산시 자인면인 이곳 서라벌 압량군 자인땅 불지촌에서 태어나셨다. 원효스님의 출생지인 불지촌 밤골이 어딘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곳 제석사가 원효의 탄생지라 믿으며 바로 스님께서 태어난 곳에 자신이 세웠다는 사라사가 바로 제석사라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확실한 유물이 없다는 이유로 원효스님의 탄생지가 아니라는 이견도 있으나, 주민들과 향토사학자들은 밤골(栗谷里) 아래에 위치한 이곳 제석사를 불땅절[佛地寺]로 부르며 원효스님의 탄생지로 믿고 있다. 한편 <한국사찰전서>에는 1625(인조 3년)년 유찬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가 부처님 오신날을 준비하면서 달아놓은 연등을 보고서야 이제 찾았구나 싶었다.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이 형식적이나마 입구문 양편에 사천왕 그림을 붙여놓았다. 더더욱 찾는 이를 놀랜 것은 비닐천막을 덮고 폐타이어들을 이고 있는 법당의 모습이었다. 빗물이 새는가보구나.

[[제석사 칠성각에 모셔진 '해동초조 화쟁국사 원효성사 진영' 사본] : 진본은 일본 고산사에서 보관하다 현재 일본 박물관에 보관중이라 한다.

    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말사인 제석사내에는 대웅전과 칠성전이 3년 전부터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져 지붕에 비닐을 덮어두고 있으며, 벽의 흙이 떨어져나가는 등 붕괴될 직전에 놓여 있으나 정부와 종단의 예산부족으로 방치되고 있으니, 이 곳이 바로 ‘해동초조(海東初祖)'로 일컬어지는 원효성사 탄생지란 말인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때마침 원효스님 열반재를 드리고 법당을 나오시는 젊으신 주지 적연(寂然)스님을 만나 합장 인사드렸다. 스님께서는 반갑게 맞이하시며 이곳이 원효스님의 탄생지임이 틀림없으며 대웅전 바로 옆의 칠성전에는 원효스님의 영정을 모셔두었다고 전한다. 그 영정의 진본은 일본의 국보급으로 지금은 일본 고산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였다.

 

원효를 탄생시킨 밤나무

[제석사 칠성각 : 안에는 원효영정이 있다.]

    그 칠성전 바로 옆에 무척이나 오래된 밤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이 마을이 밤골인 율곡이며 원효스님께서는 밤나무 아래에서 탄생하셨다니, 행여 이 나무가 그때의 밤나무가 아닐까? 아님 그 밤나무의 씨알에서 씨알로 전해져 살아오다 이제 다 늙어 버린 그 때의 그 밤나무가 아닐까? 적연스님께 여쭈었더니 스님께서는 원효스님 그때의 밤나무라 믿고 싶다며 각별한 정을 보이셨다. 비록 밤알을 맺지 못하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싹이 나고 여름이 되면 잎은 푸르러 원효성사 영정을 모셔둔 칠성전을 시원하게 드리우는 그늘이 되고 있다한다. 그렇다. 1400여 년 전의 그 때 밤나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강변(强辯)을 못하지만 그 밤나무의 후손일지라도 마치 스님을 직접 만나는 듯하여 감개가 무량하였다.  

    2천600여전 석가모니부처께서 이 세상 오실 적에도 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셨다더니, 우리 해동국의 큰 부처님이신 원효스님께서도 사라수 나무 밑에서 태어나셨다. 나무는 대체 무엇을 알고 전하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적연스님과의 점심(點心) 공양

주지 적연스님

[주지 적연스님]

    제석사의 붕괴위험이 알려지자 경상북도와 경산시는 최근 잇달아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한다. 그래서 경상북도에서는 전통사찰보전법에 의거하여 긴급보수비 1억8000만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고 경산시도 예산을 집행하여 제석사의 복원을 노력하고 있다고 적연스님은 소개하셨다. 적연스님께서는 원효를 찾아 나선 나의 순례를 격려하시며 기회가 닿으면 꼭 부산 기장에 있는 장안사와 주석하신 경주의 분황사 그리고 설총이 사셨고 원효스님이 돌아가신 곳으로 전해지는 혈사(穴寺)라 추정되는 경주 함월산의 골굴사에 들러 볼 것을 권하셨다.

     적연주지스님께서는 이곳 제석사가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증거라며 석등 연화대석을 보여주시며 보배처럼 감추어 두었던 작은 사자상을 꺼내 보여주셨다. 때마침 점심(點心)공양시간이라 주지 적연(寂然)스님과 총무 성인(成因)스님이 권하는 공양자리에 앉아 절밥으로 '마음에 큰 점'을 찍고 일어났다.   (2001. 4 / 문촌)

[신라시대의 증거인 석등연화대석과 사자상

    원효스님 탄생지 대한불교 조계종 제석사
    주소 : 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번지
    전화 : 053-857-2271 / 856-7014
    원효성사 탄생 다례재 : (음) 5월 4일
    원효성사 열반일 : (음) 3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