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함월산 자락의 골굴사는 선무도 수행도량으로 유명하지만 또한 원효대사가 열반하신 혈사(穴寺)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장항사지 5층석탑 - 석굴암을 넘어 토함산을 내려가는 새길

장항사지 5층석탑

[장항사지 5층석탑]

    분황사주차장에서 우회전하여 4번 국도를 달리면 보문 관광단지를 지나 추령고개를 넘어 감포 쪽으로 가지만 나는 생각도 없이 좌회전하여 울산으로 내려가는 7번국도를 달렸다. 마침 불국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여 992번 지방국도를 계속 올라가니 석굴암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가지 않았는데....하면서도 토함산 정상까지 가는 듯 올라가니 감포로 내려가는 길이 새로 나있었다. 참으로 기분 좋게 새롭게 난 길을 따라 토함산을 굽이굽이 내려오다가 길 건너 산 중턱에 석탑이 보였다. 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워놓고 여행 중에 계획 없이 마주친 석탑이라 남모르게 보배를 줍듯 사진에 담았다. 돌아와 여러 답사길라잡이 책을 뒤지자 바로 그 유명한 장항사지 오층석탑임을 알았다.

    예전 감포앞바다 대왕암을 보고 포항으로 올라가던 929번 지방도를 만나지 못하고 장항리를 길을 계속 따라 가니 여전히 깨끗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달리고 있었다. 이 길도 새롭게 생겨난 14번 도로였다. 오늘은 원효대사의 성은으로 시원스레 새 길을 달리니 운이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골굴사 - 원효대사가 열반하신 곳으로 알려진 한국의 돈황석굴

골굴사 일주문

[골굴사 일주문]

골굴사

[골굴사의 암벽동굴 법당] : 원효스님께서는 이러한 혈사에서 돌아가셨다는데...]

      안동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달리니 달을 머금었다는 함월산(含月山) 골굴사(骨屈寺)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좌회전하여 조금만 올라가니 함월산 기슭에 한국의 돈황석굴 격인 골굴사를 만나게 되었다. 골굴사는 돌로 돔을 쌓고 흙을 덮어 굴처럼 만든 석굴암과는 달리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석굴사원이다. 문화재로서의 귀중함과 석굴사원으로서의 희귀성에 반해 일반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지만 요즈음에는 선무도(禪武道)의 수행도량으로 알려지면서 동양무술에 대해 관심 많은 서양인들과 방학중 학생들의 관심이 고조되고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있다. 선무도는 불가에서 비롯해, 중국 소림사와 신라 화랑도에 이어 태권도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전통 수행법이다.

      골굴사에는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석회암 12개의 석굴이 나 있으며, 암벽 제일 높은 곳에는 돋을 새김으로 새긴 마애불상이 있다. 조선시대 화가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이라는 그림에는 목조 전실이 묘사되었고, 숙종 12년(1686)에 정시한이 쓴 [산중일기]에 의하면, 이 석굴들이 마을을 이룬 듯하였으며, 법당굴이니 설법굴이니 하는 구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남아있는 굴은 법당굴뿐이며 다른 굴은 모두 허물어지고 겨우 소나기만 피할 수 있는 형체로 남아 약사굴, 산신당, 지장굴, 라한굴, 신중단으로 불리며 일반 절과 같이 전각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11교구 골굴사는 안에는 세계선무도 협회 선무도 대학이 있으며 연중 수시로 선무도 수련회에 참가할 수 있으며, 방학기간에는 청소년을 위해 특별수련회가 개설된다.

    원효스님 열반지 대한 불교 조계종 11교구 골굴사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 산304-1번지
    총본원 전화 : 054-744-1689
    세계선무도협회 선무도 대학 수련회 안내 054-745-0246

골굴사 마애석불

골굴사 마애석불

골굴사 마애석불

한국판 돈황석굴인 골굴사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애석불 가까이 가려면 가파른 석회암벽을 올라가야한다.

      굴과 굴로 통하는 길은 바위에 파놓은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상에 새겨진 마애불로 오르려면 자연동굴을 지나게 되어 있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보물 제581호)은 오랜 풍화로 떨어져나간 부분이 많다. 바위를 이루는 석회암의 약한 성질 때문에 더 쉽게 부서진다한다. 지금은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둥근 모양의 투명한 보호각이 설치하였다. 오랜 비바람에 의해 오른쪽 귀와 오른 손, 가슴 등의 조각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으나 뚜렷한 얼굴 윤곽과 이 산의 이름같이 '초승달을 입안에 머금은 듯'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은 가파른 암벽을 기어올라 온 방문객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있다.  

      원효대사가 죽은 뒤 그 아들 설총이 원효의 뼈를 갈아 실물크기 만큼의 소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있는데, 원효대사가 돌아가신 곳이 '구멍 절', 혈사(穴寺)라고 하며, 또 설총이 한때 아버지가 살고 있던 동굴 부근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골굴사는 일반적으로 원효의 열반지로 알려져 있다. 49일 재를 앞두고 한국사상 순례를 떠난 불효자는 선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면서 마애불상전에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지장보살, 나무 원효성사'를 부르면서 삼배를 드렸다.   

      새롭게 난 14번 국도를 시원스럽게 따라 올라오면서 원효스님과 혜공스님의 재미난 일화를 보듬고 있는 오어사를 찾아갔다. 아침 일찍 대구를 떠나 원효스님과 수운 최제우선생님을 찾아서 경산 제석사와 경주의 용담정 그리고 분황사를 거치고 토함산 석굴암을 넘어 함월산 골굴사를 지나 이제 마지막으로 포항 오천의 오어사를 찾은 시각은 거의 저녁 7시가 가까웠다. 포항시에서 내려오려면 포항에서 포항제철소를 지나 청림삼거리에 가면 직전하면 구룡포, 우회전하면 오천 가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오천읍까지 계속 직진하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오어사 입구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2001 / 문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