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에는 지눌이 있다. 지눌이 있기에 송광사가 있다. 한국 대승불교 조계선종의 대표적 총림이면서 통도사, 해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하나인 송광사를 찾아 지눌스님의 정혜결사 뜻을 찾는다.


지눌 스님을 찾아서 (2) - 송광사를 찾아서

송광사를 찾아서

청량각

[청량각]

    ▣ 청량각
    산사에 들어가려면 개울을 건너야 한다. 개울을 넘어야만 혼탁한 속세의 풍진을 떨칠 수 있고, 사바의 번뇌를 씻을 수 있다. 송광사 앞을 휘감아 동구로 굽이쳐 흐르는 개울은 나그네의 풍진을 깨끗이 벗어놓으라며 청량각 아래를 흐른다. 청량각(淸凉閣, 맑고 시원하게 씻어주는 문설주)은 깊숙한 계곡에 홍예(虹霓,무지개)다리를 쌓고 그 다리 위에 지붕을 올린 지붕다리건물이다. 청량각 지붕 아래를 지나면서 위를 올려다보면 보위에 턱을 괴고 있는 용이 산사로 들어가는 이들을 굽어살피고 있다. 그 익살스런 모습이 속세의 번뇌를 맑고 시원하게 씻어주고 있다.
     

송광사비림

[송광사 비림]

    ▣ 비림과 보조국사 지팡이
    청량각을 지나 평평한 길을 굽어 오르면 오른편에 송광사의 역대 고승 및 공덕주의 비석이 서 있는 비림(碑林)이 있다. 승보 사찰로서의 송광사가 지닌 역사와 사연이 새겨진 비석들이다.  일주문 앞에는 앙상한 나무기둥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란다. 스님이 지팡이를 이곳에 꽂았는데 그 나무가 자라났다고 하며, 스님이 돌아가시던 날 이 나무도 시들해지더니 결국 죽어 지금 앙상하게 기둥만 남았다 한다.

 대승선종 조계산 송광사 일주문

[일주문]

    ▣ 일주문
    이제 산사에 들어가는 첫째 문에 다다랐다. 좌우로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그 문을 일주문(一株門)이라 한다. '모든 진리란 일심(一心)으로 인하여 나타나고 일심(一心)으로 돌아간다'는 불교의 진리관을 뜻하는 것으로 사찰의 이름을 공포아래에 현판하고 있다. 보통의 절은 가로 한 줄로 길게 절 이름을 적는데 이곳 송광사의 일주문 편액은 3열 세로로 글을 써서 지붕공포 중앙 아래에 현판을 달았다. 3열의 중앙에 '大乘禪宗'(대승선종), 우측 열은 '曹溪山'(조계산), 좌측 열은 '松廣寺'(송광사)라 한 것이다. 이는 송광사가 바로 조계선종의 종풍을 떨치는 절이란 것을 말하고 있다.

세월각, 척주각

[세월각, 척주각]

    ▣ 척주당과 세월각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눈앞에 몹시 작은 두 채의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건물이다. 현판에 척주각(滌珠閣, 구슬 씻는 집), 그리고 세월각(洗月閣, 달 씻는 집)이라고 쓰여진 이 건물은 돌아가신 분의 영가(靈駕, 영혼)를 목욕시키는 곳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십대왕전에 나가 살았을 때의 공과에 대해 10번의 심판을 받는다하는데 그 때마다 살아있는 이들이 재를 올린다. 그 재를 천도재(薦度齋)라 한다. 돌아가신 날로부터 7일마다 일곱 번 드리는 49재와 100일째 드리는 100일재, 1년, 2년째 드리는 소상재·대상재 이렇게 열 번의 천도재를 올린다. 재를 드리기 전에 망자의 위패를 그 속에 모셔놓고 영혼을 목욕시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왼쪽 세월각은 여자영가의 관욕소요 오른쪽 척주각은 남자영가의 관욕소이다.

    ▣ 우화각과 침계루
    이제 목전의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려면 또 한번의 조계산 청계수를 건너야 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세속진뇌를 씻으라는 듯 계수를 건너는 곳에 능허교(凌虛橋)라는 무지개다리가 있다. 다리 위에는 우화각(羽化閣, 깃털같은 문설주)이라는 이름의 문루가 4칸 길이로 서 있다. 이 곳에는 옛부터 송광사를 거쳐간 시인 묵객들의 한시가 빽빽하게 걸려 있다. 우화각을 건너기 전에 오른쪽으로 바라본 계수와 침계루(枕溪樓, 계곡을 베고 있는 누각)는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절묘한 조화절경을 보여준다.

우화각

침계루

[우화각 앞에서 일행과 함께]

[침계루와 계수는 조화절경을 이룬다.]

 

 천왕문

[천왕문]

    ▣ 천왕문
    우화각을 지나면 바로 이어지는 천왕문(天王門)으로 들어간다. 천왕문은 일주문 다음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사찰의 둘째 문이다. 천왕(天王)이란 고대 인도의 종교에서 숭상되던 귀신들의 왕이었는데, 불교이후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수미산 이 우주세계를 십계(十界)로 나누고 있는데,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아수라계, 인간계, 천(天)계의 여섯 세계는 업보에 따라 윤회하는 '헤맴의 세계'이며,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는 윤회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세계'이다. 이 가운데 6번째의 세계에 계신 분들이 바로 사천왕이다. 사천왕은 수미산의 동서남북 네 방향을 주재하며 불법을 호위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육중한 그 모습에 위압을 당하여 무섭게도 느껴지지만 실은 착한 이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분들이라 고마움을 느끼면서 만나야 할 분들이다. 현 건물의 크기는 4방 3간으로서 23평이며 소조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 종고루

[종고루 옆의 선시 한수]

종고루

[종고루]

    송광사 종고루는 누각을 이루며 일층은 사찰경내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용되고 이층 누각은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범종(梵鐘) 등의 사물(四物)을 비치하여 아침 저녁으로 예불 전에 울리고 있다. 범종 소리는 인간 중생을 제도하는 소리이며, 운판은 날짐승, 목어는 물짐승, 법고는 들짐승을 제도한다. 종고루 문을 지나치기 전에 식수대가 있어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승보각 뒷벽에 써 붙여 놓은 시 한 수를 눈에 넣었다.    

      바람은 자도 / 꽃은 떨어지고
      새소리에 / 산은 더욱 그윽하다.
      새벽은 흰구름과 / 더불어 밝아오고
      달은 물속에서 / 흘러간다.

      하루종일 봄을 찾아도 / 봄은 안보여
      짚신이 다 닳도록 / 온산을 헤매었네
      봄 찾는 일 그만두고 / 집으로 돌아오니
      울타리의 매화나무에 / 꽃 한송이 피어있네.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세 번을 읽어보니 지눌을 찾아 먼길을 온 나를 꾸짖는 듯 비웃는 듯 날 더러 돌아가라는 듯 하다.

[대웅보전]

승보전

[승보전]

지장전

[지장전]

불일문

[불일문]

국사전

[국사전]

수선사

[수선사]

[수선사의 현판]

진여문과 설법전

[설법전과 진여문]

응향각

[응향각]

도승당

[도성당]

관음전

[관음전]

보조국사 감로비

 [불일보조국사 감로부조탑]

     ▣ 대웅보전
    종고루를 지나 드디어 부처님 계신 내정(內庭)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불탑이 없어 더욱 넓었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던 가로누운 '아(亞)'자형 대웅전 건물이 정면으로 우뚝 솟아 있다. 이 건물은 8차 중창불사 때 당대의 최고 전문가들이 불사에 직접 동참하여 자기 연구 성과를 거리낌없이 반영한  결과라 한다. 대웅보전 안에는 삼세여래(三世如來)와 사대보살상(四大菩薩像)을 봉안하였는데, 삼세불이란 과거, 미래, 현재를 주관하시는 부처님을 말한다. 석가모니 현세불이 중앙에, 좌우로 과거불인 연등불, 미래불인 미륵불이 계신다. 사대보살상이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말한다. 삼세불을 받치고 있는 목제 대좌의 전좌우 3면에는 석가모니와 한국 불교의 법맥(法脈)을 이어 온 원효스님과 지눌스님의 생애를 조각하였다.

    삼세부처님께 향을 사르고 돌아가신 선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삼배를 차례로 올렸다.

    ▣ 승보전
    승보전(僧寶殿)은 1988년 이전에는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인데 손상없이 대웅보전 우측으로 이건(移建)하였던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재현하여 석가모니부처님과 마하가섭, 아난다. 사리자, 수보리, 라훌라 등 10대제자와 16나한 그리고 1,250인의 제자상을 재현하였는데, 송광사가 승보종찰임을 상징하는 법당이다. 승보전 좌우후면에는 마음을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아가는 심우도와 지눌스님의 정혜결사도를 벽화하였다.

    ▣ 지장전
    대웅보전 왼편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있다. 돌아가신 분의 천도를 위하여 지내는 모든 재식(齋式)이 거행되는 곳으로 중앙의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좌우의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봉안하였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에서 고난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부처 되기를 포기하신 구원의 부처님이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내 슬픈 아이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내가 송광사를 찾아온 까닭은 바로 지눌을 찾기 위함이지 중앙 법당이 목적은 아니었다. 내 여기까지 오게 된 까닭은 바로 대웅보전 뒤 석축 위에 배치된 국사전과 수선사였다. 이는 또한 송광사를 가장 송광사답게 하는 수선 전당이다.  

     ▣ 국사전
    지장전 앞을 나와 약사전(보물 제302호), 영산전(보물 제303호)을 일견하고 불일문(佛日門) 계단을 올랐다.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선방출입문이라 외부인들의 출입을 제한하였다. 마침 지나는 스님이 계시어 합장 인사드린 후, 국사전 가까이 가야할 까닭을 말씀드리고서야 겨우 불일문을 지나 국사전을 가까이 하였다. 5월의 영산홍은 국사전 지붕을 불태우듯 뒷동산에 만발하였다.

    국사전(國師殿)이야말로 승보사찰 송광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고려시대에 왕으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라는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열 다섯 분의 국사와 조선시대에 그 공덕이 그 옛날의 국사와 같다고 하여 종문에서 국사의 칭호를 붙인 고봉(高峰)화상을 합한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그들의 덕을 기리는 곳이다. 1951년 대화재에도 국사전만은 화재를 피하였는데 이는 국사들의 법력(法力)에 의한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건립 년대를 확실히 할 사료는 없지만 대체로 1450년 전후의 건물로 판정하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정면 4칸, 측면 3칸(11m×4m)의 맞배지붕이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석조기단은 특이하게도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장방형의 석물을 가로로 눕히기도 하고 세로로 세우기도 하여 쌓았다. 안타깝게도 1995년에 16국사 탱화 중 13점은 도난당했다 한다. 국사전은 국보 제56호로 지정되어 매우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 수선사
    수선사(修禪社)는 최초의 조계총림의 방장인 보조국사의 거실이며 송광사의 전신이다. 국사전과 더불어 승보사찰 송광사의 얼굴이다. 그러기에 대웅보전보다 높은 석축 위에 조성되었다. 1951년의 화재로 모두 소실되고 말았는데 현 건물은 1969년에 새로 지었다. 전면 6칸, 측면 칸으로서 측면은 전후에 툇마루가 각각 1간씩 있으며 현재 내부에는 커다란 둥근 거울만 하나 있을 뿐이다. 이 건물은 송광사의 대표적 선방으로서 선승이 상주하며 참선하고 계신다. 수선사 앞마당에 빽빽히 심어진 나무들에 가리어 수선사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일체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분위기가 차분한 선실이다.

    ▣ 설법전
    대웅보전 뒤의 석축중앙에서 높은 계단 위를 바라보면 작지만 아름다운 진여문(眞如門)이 보인다. 이 진여문을 들어가면 설법전(說法殿)이 있다. 설법전은 본래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인쇄하여 봉안해 두던 곳이다. 광무 3년(서기1899)봄에 나라에서 해인사 대장경 4부를 칙인하여 그 1부는 전국의 명찰에 분산 보관했고 나머지 3부는 삼보사찰에 각각 봉안하였다. 통도사와 해인사에는 장경은 지금도 보존되어 있으나 송광사의 장경은 1951년 화재시 설법전과 함께 불타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은 1968년 중건되어 법회 등을 위한 대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 관음전과 지눌스님 부도탑
    대웅보전 오른쪽의 응향각을 바라보며 계단을 내려와 승보전 왼쪽에 위치한 관음전(觀音殿)을 찾았다. 자비의 화신이며 모든 중생의 번민을 덜어주고 편안케 해주는 권능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당이다. 광무 7년(서기 1903)에 건립되었다. 관음전의 뒤쪽 언덕의 계단을 오르면 지눌스님의 부도탑이 있다. 높이 265cm의 이 탑은 고려 부도탑에서도 완전히 말기적 특징을 보이고 있고 4각 기단 등은 대체로 딱딱한 감을 주고 있다. 사중 기록에는 희종 6년(서기1210)의 건립이라 했다. <불일보조국사감로지탑>이라 하여 근세의 명필 오세창(吳世昌)의 글씨로 탑명이 새겨져 있다.

    ▣ 승보각 유물전시관 문화재
    대웅보전 맞은편의 유물전시관 승보각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전시되어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항상 지니고 다니던 목조삼존불감(木造三尊佛龕; 국보 제42호)을 비롯하여 지눌스님의 <권수정혜결사문> 경판과 <수심결> 경판도 있으며, 스님이 목욕 때 신었던 신발도 보관되었다.

    그 밖에 고려고종제서( 국보 제43호), 노비첩(보물 제572호), 수선사형지기, 경질(보물 제134호), 대장경 표지물인 경패( 보물제175호), 금동요령(보물 제176호), 자정국사사리함(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호), 능견난사(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호), 고려문서, 금강저(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 고봉국사주자원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 팔사파문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호), 묘법연화경찬술 등이 보관되어있다.

수심결 경판

경패

[지눌스님이 지니고 다니신 목조삼존불감]

[대장경 표지물, 경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