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님을 향한 사모의 정을 잠시 거두고 가는 길에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을 찾아 산사로 오른다. 가는 길이 바빠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늦으면 자고 가더라도....


퇴계 선생님을 찾아서 (3)-최고의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

안동 천등산 봉정사

봉정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 : 국보 제15호, 12-13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지붕 건물]

    그렇다. 퇴계의 길이 아무리 바쁘다 해도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라는 봉정사 극락전을 들러보아야 한다. 학봉 김성일 선생 구택을 나와 곧장 길을 오른다.

    안동시 서북쪽의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天燈山)기슭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스님의 제자 능인스님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공민왕 12년 1363년에 옥개부분을 중수하였다. 한편 682년(신문왕 2)에 영주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는 도력(道力)으로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렸는데, 이 종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또 일설에는 의상이 화엄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산에 오르니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혔고, 청마(靑馬)가 앞길을 인도하여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산이름을 '하늘등불뫼' 천등산이라 하고, 청마가 앉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절 이름을 '봉황머문절' 봉정사라 하였다고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16교구 천등산 봉정사
      주소 : 경상북도 서후면 태장리 901
      전화 : 054-853-4181·4183 (FAX) : 054-853-4185
      홈페이지 : http://www.pongjongsa.org

    대웅전 앞을 곧장 지나 서쪽 화엄강당 뒤편에 키작은 3층 석탑을 중심으로 한 아늑한 구획이 있는데, 여기에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극락전이 석탑 북쪽에 자리잡고 있고 그 서편에는 선원인 고금당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 단층

[극락전 정면 단층 가구 : 기둥 윗몸에 창방(昌枋)을 두르고 주두를 올린 후 그 위에 공포를 짜올려 구성하였다. 첨차는 출목(出目)의 첨차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치고 이로써 지붕 전체를 받치게 하였다.]

극락전 측면 가구

[극락전 측면 가구 : 기둥 높이에 변화를 주어 귀기둥을 평주(平柱)로, 그 안쪽의 두 기둥을 약간 높은 고주(高柱)로 하고, 가운데 고주는 마루도리까지 올라가게 하였다. 여기에 따라 보의 높이에도 변화를 주었다.

    국보 제15호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기록되는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중기인 12-13세기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8,900년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아담한 규모로 지은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 윗몸에 창방(昌枋)을 두르고 주두를 올린 후 그 위에 공포를 짜올려 구성하였다. 첨차는 출목(出目)의 첨차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치고 이로써 지붕 전체를 받치게 하였다.
    건물바깥쪽으로는 정면 가운데 칸에 판장문을 달고 양 옆칸에는 창을 내었으며 그밖의 3면은 모두 벽으로 막아 감실형(龕室形)건물을 구성하였다. 정면 창방 위에는 산 모양으로 만든 복화반대공(覆花盤臺工)을 매 칸마다 얹어서 뜬장혀를 받쳤다.

    측면은 기둥 높이에 변화를 주어 귀기둥을 평주(平柱)로, 그 안쪽의 두 기둥을 약간 높은 고주(高柱)로 하고, 가운데 고주는 마루도리까지 올라가게 하였다. 여기에 따라 보의 높이에도 변화를 주었다.
    기둥머리 위에는 3겹으로 포갠 첨차와 장혀 및 주심도리가 길게 튀어나온 채 측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종중도리(宗中道里) 및 외목도리와 더불어 양가(樑架, 대들보와 시렁)를 이루고 있다.

    이 건물의 몇가지 특징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고려까지 계승된 이른바 古式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이 곡면으로 내반되어있는 점, 대들보 위에 산 모양에 가까운 복화반대공을 배열하고 있는 점, 첨차 끝에 쇠서를 두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양식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목조건물 최고(最古)인 극락전은 기둥을 주황색으로 벽면을 노란색으로 최근에 칠한 듯 단장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사극(史劇)드라마 촬영을 위해 금방 조립 제작된 세트장 같았다.

봉정사 고금당

봉정사 고금당과 3층석탑

[봉정사 고금당과 3층 석탑 : 극락전과 고금당의 중심을 이루며 아름드리 놓여 있는 3미터 높이의 키작은 이 석탑은 가람 배치나 조성 양식으로 보아서 건립년대는 고려(高麗) 중엽(中葉)을 추정된다.

    화엄강당과 함께 양쪽에서 극락전을 시립하듯 서 있는 고금당(古金堂)은 이름의 뜻이 '옛 금당'이어서 재미있다. '금당'은 삼국시대에는 절의 가장 중요한 중심 건물로, 불상을 봉안한 건물을 이르는 명칭이었다. 만약 이 건물의 전신이 금당이었다면 이 금당 자리에는 본래 극락전이나 대웅전이 들어서기 전 봉정사 초창기에 수도하던 암자가 있었을 것이다. 암자가 있던 그 자리에 금당이 지어졌고 그 금당은 절의 구조와 중심이 대웅전으로 옮겨지면서 다시 '고금당'이란 이름으로 남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지붕집으로, 1616년에 중수한 조선 초기 건물이다. 봉정사의 다른 건물들이 그렇듯이, 규모가 작은 건물치고는 지붕이 큰 편이고 처마가 매우 깊다.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식 집이지만 조선 중기에 주심포식 결구가 단단한 익공식으로 발전해 가는 과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옆에서 보면 서까래를 받는 도리가 길게 뻗어나와 건물이 큰 갓을 쓴 듯해 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보물 제449호로 지정된 고금당은 1969년에 크게 해체 수리했는데, 해체 전에는 지붕의 북쪽이 팔작지붕이었고 방 앞에는 쪽마루가 달려 있는 등 지금 모습과는 달랐다. 그러므로 건물은 조선 초기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후대에 살기 편하도록 고쳐지어 변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봉정사 극락전  3층석탑

    극락전과 고금당의 중심을 이루며 아름드리 놓여 있는 3미터 높이의 키작은 이 석탑은 가람 배치나 조성 양식으로 보아서 건립년대는 고려(高麗) 중엽(中葉)을 추정된다. 이중(二重) 기단(基壇)의 방형(方形) 석탑으로서 기단부(基壇部)에 비해 탑신부(塔身部)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遞減)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율이 적고 옥개석(屋蓋石)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反轉)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 일부는 남아 있지 않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어있다.

서후초등학교의 단군상

서후초등학교교정의 단군상

[서후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

    봉정사를 내려와 들어온 길을 다시 나가면서 서후면사무소 맞은 편의 서후초등학교 교정에 들렀다. 일요일이라 아무도 없을 것 같았지만 여정을 잠시쉬고 물이라도 한 모금 얻어 마실 양 들어갔다. 교정은 한가롭고 동네 어린 아이 대여섯이 나무 그늘에 옹기종기 공기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우측출입문 컴퓨터교실 앞 정원에 건립된 [통일기원국조단군상] 앞으로 발을 옮겼다. 새삼, 어느 도회지에서는 보편종교교육에 위배되며 우상숭배라는 편견으로 단군상의 머리를 깨부수고 철거할 것을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과 신의 형상으로 만든 것만을 '우상'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자기 것을 고집하고 맹목적으로 믿거나 따르며, 타(他)에 대해서 악의적으로 지니고 있는 모든 무지와 편견이 또한 '우상(偶像)'일 것이다. 자라나는 우리 배달의 아이들에게 건전한 국가관과 역사관 그리고 통일의지를 함양하기 위해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우상(偶像)'이 또한 걱정스럽다. 다행히도 이곳 서후초등학교의 멀쩡한 단군상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별 탈 없이 잘 계시라며 안녕을 기원드렸다.   (2001/문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