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님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이왕 온 김에 고개넘어 청포도의 이육사 시인도 찾아가자. 아버지, 어머니 찾아가는 길에 외로운 구름, 최치원의 고운사도 들러 보리라.


퇴계 선생님을 찾아서 (6)-이육사 시비와 고운사 최치원

이육사 시비

이육사시비

[시인 이육사의청포도시비] :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의 시인 이육사 시비. 시인은 퇴계선생님의 14대손이다.

    퇴계묘소에서 고갯마루 하나를 넘으면 퇴계 선생 14대손인 시인 이육사의 생가 터가 있다. 안동호를 굽어  보는 유허지에는 지금 시인의 [청포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1904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태어나서 일제 치하에서 죽음으로써 항거하며 민족혼을 드높이고 애국애족의 정신이 서린 수많은 시를 쓰시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셨다. 시인의 본명은 원록(源綠)이며 육사(陸史)는 그가 일제의 옥고를 치르면서 받은 수인번호 64를 딴 그의 호이다.

    1993년 당시 안동군에서 안동호 범람으로 물에 잠긴 생가 터를 흙으로 돋우어 높이고, 선생을 추모하는 시비를 세웠다. 시비(詩碑)는 포도 모양으로 다듬은 일곱 개의 화강암 위에 동판으로 만든 육사 선생의 얼굴 모습과 대표작 "청포도"가 새겨진 비를 얹어놓았다.

청포도

                        이 육 사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시인의 유허지 둑 아래에 수건 두르고 밭 메는 두 아낙네가 있어 소리 높여 불러 여쭈었다.

    "아주머니 여기가 분명 이육사 시인의 고향 맞습니까?"

    '맞다' 하신다. 또 여쭈었다.

    "이 마을에 포도 농사 짓습니까?"

    포도농사는 '안 짓는다'신다. 예전에도 안 지었다 하신다. 참 이상하다. 시인 이육사의 고향은 어디길래,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 익어'간다 했을까?

외로운 구름, 최치원의 고운사

고운사

[고운 최치원이 설립했다는 의성 고운사]

    누구든 자기가 온 길을 되돌아 가야한다. 어머니에게서 온 나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어머니에게 가면 돌아가신 아버지도 계신다. 어머니에게로 가려면 다시 퇴계묘소를 지나고 퇴계종택을 지나고 도산 서원 앞으로 지나고 안동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뿔사! 돌아오는 길에 선생의 태실을 들린다 해놓고선 어쩌다가 이를 놓치고 여기까지 왔는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 이곳에 들리리라 체념하고 어머니께로 간다.

    안동을 지나 5번 국도를 타고 의성·대구방면으로 내려오면 큰형님께서 나 내려오는 길에 들러 보라 하신 고운사를 찾아갈 수 있다.  고운사의 '고운(孤雲)'은 바로 '외로운 구름', 최치원을 말하지 않는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騰雲山)에 있는 고운사는 일반인에게 그다지 알려진 사찰은 아니나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영주 부석사와 안동 봉정사를 비롯해 70개가 넘는 말사를 거느리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681년(신문왕 1)에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고 하였는데, 그후 비운의 천재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여지(如智)·여사(如事) 두 승려와 함께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짓고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하였다한다.

    최치원은 유학자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풍류도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풍류도란 산천을 벗삼아 심신을 단련하고 유불선 3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뭇 생물들과 접하며 그들을 가르친 깊고 오묘한 수행법이자 무리들이다. 최치원의 묘소는 없다.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가야산에서 신발을 벗어놓고 사라져 산신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고운사는 도교적 이미지로 가득한 절이다. 뒷산의 명칭도 뭉게구름을 뜻하는 등운산이고, 최치원이 세웠다는 가허루(가운루)나 우화루 역시 도교적인 색채가 물씬 풍기는 이름들이다. 하긴 우리의 불교는 여러모로 도교를 많이 끌어안고 있으며, 우리의 생활은 유·불·도 3교와 원시적 샤머니즘 그리고 근대에 전래된 크리스토교 까지 모두 하나되어 얽히고 설켜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는 다투지 아니하고 둥글고 원만히 융합하며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이 내 것 니 것 가리지 않는 우리의 민족성이다. 난 그것이 좋다.

고운사 가허루

[최치원이 세웠다는 고운사의 가허루]

    사찰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누각은 최치원이 세웠다는 가운루(경북도 유형문화재 151호)이다. 옛 기록에 가운루는 '누각에 서면 아래로는 계류가 흐르고, 뒤로는 찬란한 산들과 구름의 바다를 접하는 신선의 세계'라고 극찬한 절경이다. 가운루는 고운사의 얼굴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김봉렬)

    약사전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6호)을 예배하고 선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한 다음 한 참 동안이나 전당에 앉아 여래와 마주하고 있었다. 서애를 만나고 학봉을 만나고 퇴계를 만나고 고운을 만나고 여래를 만나고, 그렇게 혼자서 떠나온 어제와 오늘의 길을 되돌아보았다. 마음 속으로 즐기는 시를 되뇌며.......

      숲 속에서 묶여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혼자서 가라.
      혼자서 가라.

    이제 아버지를 만나러 어머니를 만나러 형님을 만나러 길을 떠나자. 해는 서산을 기웃거리며 길 눈 어두운 나그네를 재촉한다. (2001/문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