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선생님을 찾아가는 순례지는 응당 강릉 오죽헌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선생님의 고향으로 알고 있다. 가까이 파주를 모르고서............. 그래서 율곡선생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지를 선생님의 고향이며 선생님의 묘소와 서원이 있는 파주로 삼아 떠났다. (2001년 4월 29일)


율곡 선생님을 찾아서 (1)-파주의 자운서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7호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 )

율곡선생님의 고향, 파주

자운서원가는길

[자운서원, 화석정 가는길] : 서울에서 1번국도를 타고 문산으로 가다보면 줄아위(봉암)삼거리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법원리 사거리에서 좌회전, 그리고 법원여중에서 우회전하면 자운서원이 나온다.

    율곡선생님을 찾아 떠나는 순례는 응당 선생님의 탄생지인 강릉 오죽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선생의 고향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하물며 내가 가르치는 일산의 학생들도 강릉만을 알고 정작 선생님의 고향인 가까이의 파주를 모른다. 파주는 율곡선생님과 친구 우계 성현의 고향이다. 고려시대 윤관 장군이 이곳 출신이며, 조선의 청백리 황희 정승의 묘와 여생을 보낸 반구정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율곡선생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지를 먼저 파주로 정했다. 파주는 율곡선생님이 성장하시고, 선대 대대로 사신 고향이다. 또한 선생님이 즐겨 올라 시정에 잠기곤 하신 화석정과 선생님의 묘소가 있으며, 선생님의 학덕을 기리는 자운서원이 있다.

자운서원 가는 길

율곡이이신도비

[율곡 이이 선생님 신도비]

    고양 일산에서 중산마을을 지나 봉일천으로 가면 임진각으로 가는 1번 국도를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1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계속 오면 파주를 만나게 되고 봉암(줄아위)3거리에서 파주읍내로 들어가게 된다. 제법 번잡한 법원읍 4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가다보면 법원여중 못 미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자운서원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읍내 가게들 사이에 난 작은 도로라서 눈 여겨 살피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고개를 넘어가면 경기도 교육위원회의 율곡 교원 연수원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자운서원은 바로 경기도 율곡교육연수원 아래에 있었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원이 있는 경내에 들어서면 자운산 자락에 율곡선생님의 덕을 기리는 신도비가 왼편에 있고, 다음에 자운서원,  맞은편 저 멀리에는 선생님 일가의 묘역, 오른쪽의 좀 높은 언덕에는 율곡 교원 연수원, 그리고 가까이 오른편에는 율곡기념관이 시계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많이 찾아왔다. 신도비는 언덕을 높여 화강암의 비문을 세운 날렵한 팔짝 지붕을 얹었다. 비석앞뒤좌우에는 글씨가 빽빽하게 빈틈없이 새겨져 있었다.

자운서원과 묘정비

자운서원 정문

[자운서원 정문, 외삼문]

자운서원 강당

[자운서원 주강당]

자운서원 묘정비

[자운서원 묘정비]

자운서원

[자운서원 사당] : 율곡선생님과 함께 애제자 김장생, 박세채를 제향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소재, 경기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된 자운서원(紫雲書院)은 율곡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돼있는 기호사림의 본산이다. 1615년(광해군7)에 율곡의 애제자 김장생을 중심으로 설립되어 1649년(효종 즉위년) 왕이 자운서원(慈雲書院)이란 사액을 내렸다. 율곡의 학문을 이어받은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던 곳이다. 그러나 1871년 '한 사람 한 서원'이라는 원칙의 대원군 서원 철폐령에 의해 황해도 배천 문회서원 만을 남기고 자운서원은 폐쇄되었다. 1970년에 사당만 복원하였으며 근래에 들어와서 강당을 복원하고 선학후묘(先學後廟, '앞에는 강학의 배움터, 뒤에는 사묘의 예배터')의 정통적 서원구조를 살리게 되었다.
    최근래에 건립된 자운서원 정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자운서원을 강당이 나온다. 좌우에 거대한 고목 느티나무가 시립을 하듯 서있다.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된  자운서원 묘정비(紫雲書院 廟庭碑)가 강당 왼편 뒤, 내삼문 앞에 위치해 있다. 이 비는 자운서원에 배향된 율곡선생님의 학덕을 기리는 한편 자운서원의 건립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은 예서체로 되어있는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당대의 명필인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이 썼다. 상단에는 김수항(金壽恒)이 [紫雲書院 廟庭碑](자운서원 묘정비)라는 전액(篆額, 머리글)이 쓰여져 있으며 비문 끝에 쓰여진 "崇禎 五十六年 癸亥"(숭정56년 계해)라는 연기로 보아 1683년(숙종 9)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내삼문의 솟을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높은 지대 위에 아담하게 앉은 사당이 있다. 자운서원이라는 현액을 달고 있는 서원은 사괴석 담장을 둘렀으며, 건물구조는 익공계 형식에 팔짝 지붕이다. 정면 3칸의 정남향의 집이라 햇살을 따스하게 받고 있었다.

    자운서원에서 서쪽 협문을 나오면 약수터가 있다. 물이 약이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자운서원을 에두르는 자운산 산책로를 걸었다. 봄 햇살이 제법 따갑게 내리쬐는 산책로는 율곡교육연수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자운산 자락을 에두르며 산책로를 내려가는가 싶더니 오른편 기슭에 율곡선생님일가의 묘역이 나타났다. 묘역을 참배하고 문성문을 내려가면서 율곡 기념관을 들렀다.  

    일층에는 율곡선생님과 특히 그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사임당께서 일곱 살 때 그렸다는 산수화˙포도화 등과 율곡의 누이 매창의 매화도, 그리고 서간문, 유산분배기록 등을 진열하였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복제품이라 아쉬움이 있었다. 이층에는 율곡선생님 사상을 정연하게 전시하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운서원에서 바라본 율곡연수원

율곡의 자운서원

자운서원 사당 위에서 내려다보면 맞은편 남쪽에 율곡연수원이 보인다.

[율곡기념관에서 바라본 자운서원] : 서원의 왼쪽으로 자운산을 오르는 산책로는 서원과 율곡선생님 일가의 묘역을 에두르며 율곡연수원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