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삶의 시작과 끝이었던 가정리 탄생 유허지와 묘소를 찾아본 길을 달려  동학사상의 탄생지인 구미산 용담정을 찾아간다. 이 곳은 수운 선생님께서 득도하시고 1860년부터 1863년 사이에 인간지상 절대평등의 가르침을 담은 <용담유사>를 쓰신 곳이다.


최제우선생님과 용담유사

최제우선생님동상

[용담정의 최제우 동상]

       최제우선생님의 유년시절은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 아버지마저 사별하여 20세에 길을 떠나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다. 선생님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비참한 민중의 생활을 보았다. 당시의 정세는 안동 김씨 세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수탈을 견디지 못한 민중들은 산 속과 외딴 섬으로 숨어들었다. 30대에 접어든 그는 귀향한 뒤 처가인 울산으로 이사했으나 다시 구도의 길을 떠나 36세 때 용담에서 주도에 정진하였다. 세상 인심의 각박함과 어지러움이 바로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것을 깨닫고 천명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깨달음을 얻은 선생님은 동학을 창시하여 주변사람들에게 동학을 가르쳤다. 포덕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성황을 이루자 관가에서는 후천개벽설과 검결(劍訣:칼춤을 추며 검가를 부르는 의식)이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고 여겼다. 선생님은 전라도에 피신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포덕 4년 만에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체포당하여 대구감영에서 1864년 3월에 참형을 당하셨다. 선생님의 나이 41세때의 일이다. 이곳 용담정은 수운 선생님께서 득도하시고 1860년부터 1863년 사이에 인간지상 절대평등의 가르침을 담은 <용담유사>를 쓰신 곳이다.

      <용담유사>는 천도교의 경전으로 서양세력의 동점(東漸)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이에 맞서기 위한 정신자세로서 동학을 내세운다는 뜻이 주가 되어 있다. 일반 민중과 부녀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한글 3,4,4,4 조의 가사체(歌辭體)를 빌려 동학의 사상을 펼쳤는데, 형식이나 문체는 비록 고전 가사와 같지만 개화기의 문체를 처음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개화기 가사의 효시가 된다. 모두 904구의 가사로 아들과 조카에게 내리는 교훈 형식의 교훈가, 정치·종교적으로 불안해하는 부녀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안심가, 구미산 용담의 아름다움과 득도의 기쁨을 노래한 용담가, 제자들에게 수도를 당부하는 도수가, 제자들에 대한 정회를 쓴 권학가, 수운 자신의 성장과 득도과정을 쓴 몽중노소문답가, 도덕의 귀중함을 강조한 도덕가, 도덕을 닦는 방법을 노래한 흥비가 등 8편과 부록으로 검결이 포함되어 있다.

용담정을 안고 있는 구미산(龜尾山)

      최제우선생님의 유허지와 묘소가 있는 가정2리에서 경주방면으로 1Km정도 내려오면 새롭게 단장한 특수목적학교인 디자인고등학교가 보인다. 금년도 1학년을 새롭게 모집하고 개교했다고 한다. 여러 답사안내책자나 지도를 보면 모두 '가정초등학교'라 표시되었는데 아마 학생수가 줄어들어 폐교된 것을 특수목적고등학교로 만들었는가 보다. 한창 증축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용담정 입구 안내를 따라 포장된 길을 따라 올라가니 구미산에 안겨있는 용담정의 널찍한 주차장과 우람하고 좀은 낯선 큰 정문이 나타났다.

가정리 디자인고등학교

용담정들어가는 길

[최제우선생님 묘소에서 경주방면 남쪽으로 1Km정도 떨어진 곳에는 옛 가정초등학교인 디자인 고등학교가 새로 개교하였다.]

[용담정 들어가는 길에는 옛날 마을 입구에 마다 쳐놓은 금줄처럼 구제역 예방 소독약이 허옇게 뿌려져 있다.]

      구미산(龜尾山)은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남사리와 건천읍 용명리에 걸쳐있는 594미터 높이의 산으로 이산(伊山), 비산(比山)이라고도 한다. 이 산이 최제우선생님이 용담유사를 쓴 용담정을 보담고 있는 산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최제우선생님의 기상이 느낄 수 있는 동상이 나타난다.

용담정이 있는 구미산

용담정 전경도

[구미산과 용담정 가는 길]

[용담정 입구에 있는 용담정 전경도]

동학의 성지 용담정(龍潭停)

용담정입구 포덕문앞에서

[구미산 용담정 입구, 포덕문앞에서]

용담정

[용담정 입구]

용담정 입구

[용담정 입구, 문에는 수운최제우선생님 묘에서 보았고, 동상에서도 보았던 천도교의 상징 마크가 새겨져 있다.]

용담정 표식

[용담정 입구는 여러 개의 돌을 세워놓고, 이곳이 동학의 성지 용담정라 알리고 있다.]

    최제우선생님이 포교를 하고 용담유사를 쓴 곳인 구미산 기슭의 40만평 넓은 땅에 들어서 수도원 시설이 용담정이다. 입구의 포덕문을 들어가 최제우선생님의 동상을 왼쪽에 끼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용담정이 있다.
      이 건물은 1975년 시멘트 건물에 기와를 올린 것으로 용담유사에 나오는 옛 용담정은 아니라 한다. 용담정 안에는 천도교의 기도의 식인 청수봉존(淸水奉尊, 최제우선생님이 참형을 받을 때 청수를 받들고 순교함에 따라 일체 의식을 갖는다는 의미로 맑은 물을 떠놓고 기도함)을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고 영정이 하나 있을 뿐 장식이 하나도 없다. 정갈함이 지나쳐서 초라함마저 느껴진다. 용담정 왼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천도교 수도원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맑은 물 한 잔을 마시고 수운 최제우선생님의 '사람이 곧 한울(人乃天)'이라는 인간 절대 존엄 선언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되새기며 삼가 묵념에 잠긴다.

    다시 분황사의 원효를 찾아 천년의 도시 신라의 서울, 경주로 들어간다.
     

 궁을장과 궁을기

[궁을기와 궁을장]

     : 궁을장(기)는 수운 최제우 선생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궁을(弓乙) 영부를 형상화한 것으로 태극과 궁궁을 모두 아우른 형상이다.  한울님께서 대신사 최제우에게 "吾心卽汝心"이라고 하였으니 궁을(弓乙)은 또한 마음 心 자를 파자한 것이기도 하며, 천심과 인심을 좌우로 합일하되 궁을기의 흰 바탕은 한울님 마음을 상징하고, 붉은 바탕은 사람의 마음을 상징한 것이다. 즉 음양합덕, 오심즉여심, 천인합일, 여합부절(如合符節)을 상징하여 인내천 요체를 그대로 시현한 것이다.
      궁을장은 또 그 자체로 세 부분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바깥에서부터 차례로 身, 心, 性을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이 세 요소가 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