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 한민족사의 기원 - 배달국(倍達國)

  동서 4대문명권은 본래 약 1만 년 전의 환국(桓國)으로부터 분기해 나간 것입니다.  환국(桓國)의 문명은 세계 각 지역의 고대 문화 생성과 그들의 뿌리 문화와 깊은 상호 연관성이 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환국(桓國) 말경에 환인(환국의 통치자)은 '서자부(庶子部)의 수장(首長)인 환웅에게 인간을 널리 구제하라는 명(命)을 내리시어 동방의 태백산(백두산:三神山)으로 파견하였습니다.(일연, '삼국유사', '고조선기' 참고)
  원시의 미개생활을 하던 동방 땅의 인간을 널리 구제하고 싶은 간절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환웅은, 환인께서 종통계승의 신권(神權)의 상징으로 내려 주신 천부인 3개와 동방 문명 개척단 3천 명을 이끌고, 동방의 태백산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1대 배달 환웅은 원주민인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통합하여, 3천 명의 문명개척단과 함께 수도를 신시(神市)에 정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여 새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곰과 호랑이는 동물이 아닌 토템 사상에 의해 족호(族號)를  나타낸 것임>
  이 때 환웅 천황은 신교신앙을 기반으로 신시에서 배달나라를 일으키고, 백성에게 천경신고(天經神誥 :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고 삼신상제(三神上帝)의 진리로 백성을 교화하였습니다.(북애자, '규원사화', '태시기' 참고)
  홍익인간의 한민족 개국이념도 본래 환인이 환웅에게 동방문명 개척 시에 내려준 것인데, 환인·환웅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고조선 단군의 개국이념으로 둔갑하여 국민 다수가 그렇게 세뇌되어 알고 있는 것입니다.
  환웅 시대의 실존 역사를 가공의 신화로 취급하는 것은 세뇌된 식민사관의 중독(中毒)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외의 학계에 보고된 다음의 자료만 살펴보아도, 고조선 이전의 배달 역사의 실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중국의 요녕성지역에서 대규모로 발굴된 홍산문화 유적에서 지금까지 황하유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대형 제단, 여신묘, 적석총군, 석관묘, 빗살무늬토기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서기전 4000-3000년경의 이 홍산유적을 중국학자들은 삼황오제(三皇五帝)와 연결시켜 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만주 요녕성 일대는 중국 정사(正史)에서 동이(東夷)라고 하는 지역으로, 고대에는 한민족의 활동 영역이었다.  이 유적들이 만들어진 연대인 오천 년 전은 요녕성 지역과 황하유역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화권, 정치권이었다. (1986. 8. 1, 조선일보 중에서)
  지금까지 중국 황하문명의 전유물처럼 인식해온 갑골문화는 본래 황하유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발해 연안 북부에서 기원하였다.(서기전 3500년경) 동북아의 빗살무늬토기와 석묘(적석총, 석관묘, 지석묘 등) 문화의 기원지도 발해 연안이다.  최근에 서기전 2000년경의 최고(最古)의 악기가 발해 연안에서 잇따라 발견되어, 동방에서 가장 먼저 예악(禮樂)이 발생해 민족음악으로 성장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동북아에서 최초의 청동기가 발견되는 곳 역시 발해 연안 북부이다.  이 지역은 고대에 동이족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우리 민족과 문화의 기원은 마땅히 발해 연안을 중심으로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동방 문화의 주인공이 당당히 우리'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이형구, '한국고대문화의 기원' 중에서)

이와 같이 고고학적 유물 발굴의 성과로 인해, 환웅의 배달국 건국 사실이 실존 역사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요녕성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바로 한민족입니다.
  
  한민족의 민족사의 실제적 첫출발은 배달의 환웅시대부터입니다.  때문에 우리 민족을 배달 민족이라 부르는 것도, 이 환웅천황의 배달 건국을 수천년 동안 기려왔기 때문입니다.  이 배달의 역사 시대는 1565년간(서기전3898-2333) 모두 18세의 환웅천황이 통치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시조 단군성조는 배달의 말기 기원전 2370년에 태어나 38세 되는 기원전 2333년에 배달국 말기의 혼란을 바로 잡고 아사달에서 천제로 추대되어 제위에 오르셨습니다. 따라서 올해(1998, 무인년은 단기 4331년입니다.(행촌 이암, '단군세기' 참고)
  최근에는 단군세기의 천문기록 특히 제13세 단군인 흘달천제(屹達天帝) 50년(서기전 1733년)에 다섯 개의 별이 서로 한군데 모인 '오행성(五行星) 결집현상'에 대한 기록이 사실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이 사료가 허구가 아님이 입증되었습니다.(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박창범·표준연구원 천문대 라대일 박사, 1993. 9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한국상고사학보' 제14호, pp.95-109 ; 1993. 9. 30 '시사저널' 참조)  따라서 47세의 단군의 기록은 비록 부분적인 기록 내용에 문제는 제기되고있으나, 고조선사의 전체 기틀을 알 수 있는 정사기록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 주고 있습니다.
  단군성조는 고조선의 전 영토를 삼한(三韓:진한, 번한, 마한)으로 나누어 진한(만주)은 단군 천제가 직접 통치하고, 마한(한반도)과 번한(요서, 북경일대)은 부단군격인 왕을 두어 다스렸습니다.

단군조선시대의 천문 현상 기록

  동방문명을 선도(先導)한 고조선 문화의 생생한 증거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의 고고학 발굴과 연구결과에 의하면, 고조선 강역인 만주지역의 청동기 문화 개시연대는 서기전 2400년경으로 밝혀져, 고조선은 초기부터 이미 국가사회에 진입해 있었음이 명확히 입증되었습니다.
  갑골(甲骨)문화는 본래 동방 동이족이 창조하고 계승 발전시킨 동이문화입니다. 동이족의 활동지역인 발해연안 북부에서 최초의 갑골(서기전 3500년경)이 출토되는 등 초기 갑골은 주로 이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특히 갑골은 중국 고대왕조 중에서 전형적인 동방 동이계열인 은(殷)나라에서 많이 숭상했습니다. (이형구, 『한국 古代文化 기원』 참고)
  중국학자 서량지(徐亮之)는 "중국의 책력법은 동이족이 창시한 것이다(中國曆法創始於東夷 : 『中國史前史話 246쪽)"라고 하여 동이 조선족이 책력법을 창시하였음을 명확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천자(天子)사상과 천자제도 또한 동방조선족이 창시한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에 동방 조선이 천자의 나라(天子國)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짓없이 전해주는 기록입니다. (동한(東漢)의 채옹(蔡邕), 『독단(獨斷)』 상권 참고)
  구소련학자 「유 엠 푸진」의 연구결과를 보아도 고조선은 고도의 독자적인 선진문화를 창조, 발전시킨 문명국가였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유 엠 푸진의 저서는 이미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
 
  미궁투성이의 古朝鮮을 새로운 시각으로 체계화한 학술서적으로 『古朝鮮』이 소련에서 출간되어 한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있다. '소련과학원 시베리아분원 역사언어 철학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문제의 『古朝鮮(13 × 20.5cm 330면)은 한국, 중국, 일본, 소련의 고조선 연구와 최근의 고고학 발굴을 총정리한 것으로 북한학자들의 도식화된 유물사관도 비판
해 눈길을 끈다.
  고조선의 고분가 문화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해온 「유 엔 푸진」이 쓰고 고고학자 「아 페 아클라드니코프」가 감수한 이 『고조선」은, 고조선의 강역을 요동지역으로 확대해 설정하고 기원전 4세기에는 국가형태를 갖춘 고대국가가 성립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푸진의 고조선 연구는 광범위한 문헌자료의 고증과 고고학 발굴성과를 종합한 것으로 고대사 무대를 한반도에서 만주까지 확대해 조명한 것이 특색이다. 한국학계보다 고조선을 광범위하게 다룬 푸진의 『고조선』은 소련의 한국고대사 연구를 결산한 것이다.
  푸진의 『고조선』에 따르면 고조선 초기의 주요 문화유적이 용천군 신암리, 영변의 세죽리, 개천의 묵반리, 만주 무순의 대호반, 요동반도의 쌍택자(雙宅子), 의주군 미송리 등에서 발굴되었다.
  고조선 문화의 특징을 비파형 단검문화'라고 단정한 푸진은 요동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부지역을 지배한 고조선은 1천 년 간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은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기술했다. 푸진은 낙랑의 일부세력을 제외하고는 한사군(漢四郡)도 현재 한국의 국경밖에 존재했다고 주장해 국내학계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1982.11.11, 『경향신문』 중에서)